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나마 침공 (문단 편집) === 대 파나마 제재와 [[라이베리아]] === 1989년 11월 30일 미국은 [[파나마]]에 대한 제재 조치가 강화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중에는 중대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모든 파나마 국적 선박'''은 90년 2월 부터 미국 입항이 금지될 것이라고 밝힌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선박등록세가 낮은 [[파나마]]에 편의상 선적을 둔 편의치적 선박이 많았으며 [[파나마]]는 제1의 편의치적국이었다. 이러한 제재는 [[파나마]]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줬는데 미국에 입항할 수 없다면 [[파나마]] 선적을 유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 조치가 실현되면 파나마는 2백만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될 상황에 놓였다. 물론 더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전 세계로서, 전 세계적으로는 선박등록세, 변호사 비용 때문에 6천만 달러 이상의 비용이 나갈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에 당시 주요 해운사 선박이 파나마 선적으로 되어 있었던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으므로 당시 관민대책회의가 열리는 등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한편 이 무렵 세계 제2의 선박치적국이었던 [[라이베리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파나마에 뒤지던 치적선박수를 따라잡기 위하여 3~4개월이 걸리던 선적취득절차를 20일로 단축했고 파나마보다 비싸던 선박등록세도 비슷한 수준으로 조정하였다. 하지만 파나마 침공으로 노리에가 정권이 붕괴하고 신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든 경제 제제 조치가 풀렸다. 그렇게 라이베리아의 꿈은 일장춘몽이 되었다. 물론 이미 발빠르게 옮긴 경우도 있어서 어느 정도 이득을 봤다. 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제2차 라이베리아 내전]]이 발발했기 때문에 파나마에 대한 제재조치가 유지되었다고 해도 크게 이득을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선박등록세 정도로 수백만이나 되는 인구를 부양하는 것 자체도 불가능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12220028911400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12-22&officeId=00028&pageNo=14&printNo=497&publishType=00010|참고 자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